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입학 학력고사 (문단 편집) == 기타 == * 동점자가 나올 경우 재학생이 졸업생(재수생)에 우선하며, 연소자가 연장자에 우선한다. 만일 동점자가 같은 나이일 경우 국민윤리 점수가 높은 자가 우선하며, 국민윤리 점수도 같을 경우 국어, 국사 순으로 나간다. 국사까지 같을 경우 동 순위로 처리한다. * 1991학년도 학력고사 수학이 역대 최고로 어렵게 출제[* 당시 1993학년도를 마지막으로 학력고사를 폐지하고 본 고사가 부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본고사 스타일로 수학 난도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학교나 수험가에서 예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뜬금없이 일본 역대 본고사 문제집이 출간되기도 하고 한국일보에서는 고난도 수학 문제를 특집으로 엮어서 제공한 것이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본 시험에서는 발상 자체가 어려운 문제도 있었지만 단순한 문제조차도 어이없을 정도로 숫자 계산이 복잡하게 출제돼 시간 부족으로 더 곤란을 겪었다. 그 탓에 순수 수학 전공이 아닌 공학 전공 교수가 출제([[공대]]에서는 시험 시간에 계산기를 지참한다.)한 탓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출제 난이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제기됐고, 이후 1992~1993학년도 수학 시험은 역대급으로 쉽게 출제되고 만다. 물론 이미 89학년부터 수학이 이전에 비해 계속 어렵게 출제되어 어느 정도 면역된 수험생이 많기도 했다.]돼 당시 55점 만점이었던 문과 수학에서 반만 맞으면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서울대 법대]]를 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냥 뜬소문은 아닌 것이, 당시 서울대 법대 커트라인은 295점 수준이었으므로 수학에서 20~30점 감점 받아도 나머지 과목의 감점 총합이 15점 이내면 충분히 서울대 법대를 합격할 수 있었다.] 1989학년도부터 본격적으로 난이도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던 와중에 일어난 사태였다. 서울대 의예과 커트라인이 공대 웬만한 과보다 낮은 280점대로 내려갔던 유일한 해. 당시 최고는 무기재료공학과로 298점. 단, 어렵지 않았던 다른 학년도라도, 학력고사 수학 자체의 기본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았기 때문에(1992, 1993학년도 제외), 이과는 75점 만점에 65점 이상, 문과는 55점 만점에 45점 이상이면 고득점 권으로 보았다.[* 이 서술은 9과목으로 축소된 이후의 서술이다.] * 학력고사 시절의 '고득점'이라고 하면 보통 340만점에서 '300점 이상'이었다. 요즘 말로 빗대면 '''대학 프리패스''' 수준. 아무리 서울대 상위학과라도 커트라인이 300점을 넘는 경우는 물리학과나 전자공학과 정도가 아닌 이상 거의 없었기 때문. 단 1992~1993학년도는 제외.[* 역대 학력고사의 난이도가 가장 낮았던 시험이자 마지막 학력고사였던 1993년도는 서울대 상위 학과의 커트라인이 320점 대에, 중위 학과에서도 310점대로 불합격한 사례도 많았다. 일례로, 역대급 물학력고사였던 1992학년도 전기 학력고사의 경우, 특히 자연계에서 처음으로 수학을 제 시간 안에 풀고, 가채점 결과 3년 내내 맞아본 적 없는 고득점이 나와 기뻐했는데, 다음날 학교를 가보니 수학 75점 만점을 받은 학생들이 반마다 둘셋씩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92학년도 학력고사의 경우, 직전 학력고사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시험이었고, 1992학년도 수험생을 위한 모의고사나 배치고사들이 모두 1991학년도의 출제 기조에 맞추어 나왔기에 일종의 면역의 결과물일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워낙 직전 해에 지적을 많이 받았던지라, 문제의 난이도가 객관적으로 쉬워진 탓도 있겠지만, 이미 기준점이 1989, 1990, 1991학년도의 난이도에 맞추어진, [[199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험생들의 멘탈적인 면이나, 학습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것]] 역시도 1992, 1993학년도의 대거 고득점 사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아무리 어렵게 나온 문제라도 1970년대 본고사 수준의 문제보다 쉬웠다고 한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 학생들은 수학 과목에서 검산을 '''5번'''이나 하고도 시간이 남아돌았다고 한다. 즉 학생들이(요즘도 그렇지만) 학교나 학원 등에서 출제 경향을 익히는 것이 결국 입시 공부이기 때문에, 비슷한 패턴과 난이도의 문제에는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듣도 보도 못한 스타일의 문제가 출제되면 학생들이 당황을 하던 것이다. 문제 자체만 놓고 보면 대학별 본고사 수준에는 못 미쳤다.[* 물론 1970년대 식 본고사도 최고난도의 사고력 문제(주로 증명 문제)가 아닌 이상 그 출제 경향에 익숙해지면 해 볼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결국 한국의 입시 공부란 출제 경향에의 적응기에 따라 맞춰가면(...)된단 말.] * 1988학년도~1993학년도 선지원 후시험제 시행 당시 서울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등의 주요 국립대와 연세대와 고려대 등 일부 상위권 대학의 인문사회계(문과) 학과들은 제2외국어 선택이 필수였기 때문에 실업계통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의 경우 지원 불가였다. 해당 대학의 경우 단과대학별, 또는 인문/사회/사범 계열별, 학과별로 제2외국어 선택사항이 달랐는데, 제2외국어 선택 여부가 1지망 학과 외에 2, 3지망 학과의 경우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거의 전 지원생들이 제2외국어를 선택했다. 여기에 더해 서강대나 성균관대, 한양대 등의 학교 역시 제2외국어 필수가 아님에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선지원 후시험제의 특성 상 입시 준비 과정에서(자신의 성적 향상을 전제로 한) 더 높은 커트라인의 상위권 학교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이과의 경우는 좀 다른 게, 전술한 상위권 대학의 자연과학대학(의예과 치의예과 포함)은 제2외국어 선택 필수가 보편적이었지만 공과대학, 농과대학 등은 실업(공업이나 농업) 선택이 오히려 학과와 연관된다 해서 제2외국어를 강제하지는 않았다.[* 특이하게도 1990학년도만 연세대학교가 공대에도 제2외국어 선택을 필수로 했는데, 그 발표를 시험 보는 해의 봄에 하는 바람에 이미 실업을 선택한 연대 지망 학생들을 멘붕하게 만들었다. 물론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포항공과대학교 등 타 상위권 대학 공대는 그 해도 여전히 자유선택. 경쟁률 하락을 가져온 그 결정은 실패로 돌아가 1991학년도부터 연세대학교도 다시 이전의 자유선택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공대'''만''' 지망할 이과 학생들은 대부분 실업 과목을 선택했다.[* 당연 탈락을 대비, 2지망 3지망 지원을 해야 하는데 농과대학 지망이 많았다.] * 1990학년도부터 학력고사 시험지를 [[미래엔]]의 전신인 대한교과서 주식회사에서 1989년 10월부터 인쇄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신설된 이후에도 현재까지 미래엔에서 인쇄를 담당하고 있다. 1990학년 이전에는 교학사에서 담당했다. * 학력고사 당시 영어 시험지에는 강세, 발음 기호를 묻는 문제를 출제했다. * 첫 학력고사 세대는 [[1963년]]생들이고,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는 [[1974년]]생들이며,[* [[빠른 생일]], N수 등등 제외.] 이들은 현재 [age(1974-12-31)]~[age(1963-01-01)]세이다.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인 [[1974년]]생이 65세를 넘기는 [[2039년]]쯤을 기점으로 학력고사 세대들이 모두 노인이 된다(만약 그때까지 노인의 기준이 65세 이상으로 유지된다면 말이다). * 이 당시 교육 과정의 국민윤리는 지금과 달랐다. 2차 교육과정의 일반사회 과목에 있던 반공교육이 국민윤리로 넘어오면서 국민윤리 3개의 단원이 통일문제, 우리 겨레, 우리 조국의 주제로 되어 있었다. 여기에 공통으로 현대사회와 윤리, 청소년기의 삶이 추가되었고, 4차 교육 과정에서는 문화와 윤리가 추가되고 앞의 언급된 두 단원의 분량이 추가되었다. 5차 교육 과정에서야 사상 내용이 윤리책에 나오기 시작하고 6차 교육 과정에서야 반공교육이 사라지게된다. 국민윤리가 학력고사 공통과목으로 취급된 것에는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공무원 시험]]에도 국민윤리가 있었다. 공무원 시험에서 국민윤리가 폐지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다만 배점은 국사, 국민윤리는 20점으로 하고 문과는 사회를, 이과는 과학을 25점으로 늘렸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OMR]] 카드의 채점은 87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이 담당하다가 88년부터 대학별 채점이 진행되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3681051?sid=10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